김덕주의 전해오는 마지막 일곱 번째 예언은 「닭장같은 집에 사람이 살면 세상이 다된 줄 알아라!」입니다.
이 예언은 선산 김씨 문중이나 앞서 소개한 책에서는 「벌통같은 집에 사람이 살면 세상이 다된 줄 알아라!」로 알려져 있으나 필자는 밀양 박씨 문중에서 전해오는 말로 대신합니다.
이것은 벌통은 정육각형으로 요즈음의 직사각형 모양 건물 형태에는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닭장같은 집은 지금의 아파트를 뜻하고 주택난이 심해지는 시대가 오면 인심도 각박해질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단독주택들로 이루어진 마을공동체가 해체되면서 다세대주택(아파트)이 이를 대체하였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인심이 각박해져서 사회윤리가 땅에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켜 세상이 다된 것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각도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닭장같은 집을 지금까지 알려져온 대로 아파트와 같은 다세대주택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형태로 건축한 큰 건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아래의 두 건물을 보면 닭장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데 수긍이 갑니다.
출전 : 진해고등해원양성소교사/조선총독부 체신국 해원양성소 본관
출처 : 진해의 도시형성과정에서 나타난 근대건축에 관한 연구 p.65. 경남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인수. 2004
출처 : 박건춘. 진해덕산70년사 p.21. 덕산초등학교. 2010. 일본 군인 숙사로 광복 후 진해덕산국민학교 교사(앞)와 교원 숙사(뒤)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철거-재건축 후 동진중학교 교사(앞)와 운동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 관점에서 보면 일제가 건축한 관공서나 군 관련 건물, 백화점 등의 큰 건물들이 들어선 후 우리 땅에서는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물자와 인력의 공출에 의한 일제의 수탈이 있었고, 광복 후에도 1950년 발발한 6·25전쟁으로 사상이 갈린 남북이 서로를 적대시하며 살상하였는데, 김덕주는 이러한 일련의 반인륜적 사건들에서 세상이 다된 것(종말)으로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동학사상(東學思想)과 증산사상(甑山思想)에 심취해 있었던 김덕주가 바라본 시각에서 6·25전쟁은 세상(우리나라)에서 선천(先天) 세계의 종말이며, 이후의 재건과정에 의한 우리나라의 급속한 산업화는 천지공사에 의한 개벽(開闢)과 후천(後天) 세계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김덕주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1930년대 중반 무렵에 경화장시에 구경을 나왔다가 일반인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모양새를 수상하게 여긴 일본 헌병의 불심검문을 받자 대항하다 피신(避身)한 후 증발해 버렸습니다.
김덕주는 일본 헌병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떳떳하게 밝히는 대신 피신(避身)의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그에 관해 기술한 책에서는 도주(跳走)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냥 뛰어 달아났다는 표현보다는 몸을 피했다는 표현이 바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피신을 택한 데에는 자신의 입을 통해 세간에 퍼뜨려진 예언들에 대한 처벌의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도를 닦으며 세속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남에게 구속이나 간섭받기 싫어했기 때문에 세상사와 얽히는 자체가 싫었던 그의 성격이 주된 이유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김덕주가 1930년대 중반에 피신한 후 마지막으로 장유면에서 보았다고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김해 장유면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는지, 아니면 그가 가 보고 싶어했던 증산사상의 발상지인 전북 김제의 금산사로 향하였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그대로 전설이 되어 고향인 조천마을에 묻혀버렸습니다.
그의 출생시기는 시대적 상황과 예언 내용들을 종합하면 1875년 전후에 출생하여 광복(1945년) 전후인 70세 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광복이 되어 일본의 감시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가 사망, 지병, 이주 등이 원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향인 조천마을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김덕주의 에언에 관련한 내용은 이상에서 소개드린 7가지입니다.
이 예언들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와 같은 사건의 발생에 관한 이야기만 있고, 일이 일어났을 때 주민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행동요령은 주민들의 판단에 맡겼다는 것입니다.
다음 회에는 김덕주의 초인적인 능력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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