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김덕주의 세 번째 예언을 살펴봅니다.
세 번째 예언은 「풍덕개장시(5일장)가 경화동으로 옮겨올 것이다.」는 것입니다.
■ 풍덕개장시는 풍덕(豊德)은 풍호리와 덕산리의 머리글자를 합친 것으로 현 덕산동주민센터 서편의 풍덕포삼거리 주변에 있었을 건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풍덕포삼거리의 서쪽은 조선시데에 풍덕포진(풍덕포보)이 있었고, 진해지역(웅천, 웅동 제외)에서 최초로 사립경명학교가 설립되어 학생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쳤던 곳이기도 합니다.
풍덕개장시는 지금과 같이 3일과 8일에 개장한 장시였는데 이곳에 비행장과 같은 군사시설이 건설되면서 장시는 1914년 신시가인 경화동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 전 회에 보았던 지도를 다시 열어봅니다.
격자모양의 경화동 구역의 왼쪽에는 제피내(현 경화2가천), 오른쪽에는 병암천이 흐르고, 경화동 위의 네모구역은 사립대정학교(현 경화초등학교) 에정지, 그 위의 굵은 선은 철도 예정지(현 진해선)입니다.
②, ⑥은 싸전(쌀전), ③, ④는 일용잡화, ⑸, ⑺은 고기전이 열렸던 곳입니다.
3일에는 아래의 ⑤, ③, ⑦의 광장, 8일은 ②, ④, ⑦의 광장에서 장이 열렸고, 나무전은 항상 ①에서 열렸습니다.
출처 : 진해의 땅이름 이야기(진해웅천향토문화연구회. 2000) p.153
■ 본 연재의 첫회 책 표지에 나타난 그 시절 경화장시의 초기모습을 담은 아주 귀한 사진을 봅니다.
경화장시 개시 직후인 1915년 경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하는 사진입니다.
주변 지형과, 광장의 넓은 정도, 사고파는 물건 등으로 볼 때 위 지도 ④의 위치(현 남방약국 앞 광장, 아침시장)로 일용잡화를 사고팔던 곳으로 추정이 됩니다.
출처 : 진해학교조합 발행 신문(1915년 전후 추정)
경화장시가 1914년에 개시를 하였는데 김덕주는 대략 10년 전 쯤인 1905년을 전후한 시기에 풍덕개장시가 경화동으로 이전하게 될 것임을 예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덕주는 가끔 마을로 내려와서 선산 김씨의 친척집이나 밀양 박씨의 지인들의 집에 들러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식량이나 생활필수품들을 얻어서 산의 거처로 돌아갔습니다.
김덕주가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고 이인이나 기인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경화장시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부터인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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