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실록/군항마을역사관

진해군항마을역사관 4(1912년 진해시가지)

진해인 2014. 6. 24. 06:44

진해군항마을역사관 안내실의 서쪽 벽면에 붙여놓은 대형 사진입니다. 

 

■ 「1920년대 진해면」으로 설명을 붙였습니다만 그 시기에 오류가 잇습니다..

아래쪽에 사진액자들이 놓여 있어서 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윗부분만 편집한 것입니다.

한 눈으로 보아도 시가지가 거의 정비가 끝난 것을 알 수 있고, 대부분의 건물들이 2층 장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살펴봅니다.

■ 1-4번 사진은 아래쪽이 중평한들(중평리), 그 윗쪽이 도만리와 현동리입니다.

▷ 2번, 3번 사진의 경계에 남원광장(南什)이 있습니다.

▷ 4번 사진에서 팽나무가 위치한 중원광장(中什)과 진해우편국을 볼 수 있습니다.

 

■ 5번 사진에 진해경찰서와 망루가 보입니다.

 

이 사진 속에 촬영시기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중원광장에서 지금의 흑백다방과 테마거리를 따라 올라가면 북원광장이 나오고, 그 왼쪽에 기공식만 한 진해헌병분대가 있고, 그 서쪽으로 진해심상고등소학교 터가 나무가 울창한 상태로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헌병분대 건물은 1914년에 준공이 되고, 학교는 1913년 3월에 기공하여 12월에 준공을 하였으니 그 이전의 사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학교연혁지에 동명이 변경되고, 진해의 개발계획도 등이 나타난 시기를 유추해 볼 때 위의 사진은 1912년 10월 경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주) 1912년 10월 25일 진해우편국 준공식 때 부엉산(당시 우리 이름. 현 제황산) 위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3줄의 각종 깃발들이 우편국을 중심으로 걸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1912년 10월의 진해면 이 바른 기록입니다.

■ 안내실의 북서편 풍경과 서편 사진 아래의 나머지 풍경들을 들여다 봅니다.

 

다음 회에는 1924년의 진해지도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