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실록/군항마을역사관

군항마을(2014년) 2(안내)

진해인 2015. 4. 14. 06:27

군항마을역사관은 2014년 국가기록원의 국가기록마을 지정을 앞두고 최종 심사를 위하여 내부 환경을 전면 보완하였습니다.출입구  서편의 안내코너와 대형 시가사진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입구에서 들어오면 서편에 안내코너가 보입니다.

   진해 특산인 진해콩을 판매하고 있고, 팜플렛도 무료로 제공합니다.

   길다란 탁자 위에는 방명록이 펼쳐져 있습니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지난해 10월 30일 제7호 기록사랑마을 지정식에 맞추어 제작한 것을 소개드립니다.

 

앞뒷면 각 3면씩, 총 6면으로 접을 수 있게 인쇄하였습니다.

 

제1면에는 상단에 공동발행처, 하단에 팔거리와 수령 1,100년 정도 된 팽나무(포구나무)를 배치하였습니다.

 

옆쪽의 제5, 6면은 기록사랑마을 지정 배경과 이곳의 위치안내도를 배치하였습니다.

 

제2면에는 군항마을의 역사와 진해에 대한 소개를 담았습니다. 

1960년대의 경화역으로 가는 길, 1960년대의 중원로터리에서 탑산으로 가는 길,

1920년대의 중원로터리와 진해역(1926년)의 사진이 보입니다.

아래에는 제1회 군항제, 1930년대의 앵마장(櫻馬場 벚꽃장),

2010년대의 여좌천 로망스다리와 경화역 등 벚꽃 명소로 꾸몄습니다.

수정할 자료

1906년 일본은 ~ 방사직교형 시가를 만들었다.

1) 1906~ 강제로 토지를 매수

일본은 이 일대를 일본 해군 군항으로 만들기 위해 1907년 강제로 토지를 매수한 뒤

 

2) 1912년 야마타 우시다로에 의해 진해군항대시가계획도가 설계되면서

191041일부터 해군임시건축지부에 의해 진해군항이 설계되면서

 

) 마산시가지 조성을 마친 해군임시건축지부는 191041일 진해로 이전하여 가청사에서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야마타 우시다로(山田丑太郞)는 해군임시건축지부에서 군항지 측량을 담당한 대하계(貸下係 임대계) 제도원으로 진해군항의 설계자는 아닙니다. 창원시립진해박물관 전시된 1911년 저작 겸 발행인 국하정길(宮下政吉)이 발행한 진해지도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사람에게는 주거권을 주지 않는 일본인 시가지였다.

일제강점기 동안 소수의 조선인들의 거주를 허용하였지만 사실상 일본인들을 위해 조성된 시가지였다.

 

) 일제강점기에 시가지에 거주한 조선인은 나타난 통계(기록)로 볼 때 대략 10% 정도였습니다.

 

제3면에는 군항마을역사관의 내부전시실,

제4면 상단에는 중원로터리의 변천을 시대순으로 배치하였는데, 1950년대에 경화동의 2번국도(중앙로)에서 경화역으로 가는 길을 넣은 것은 옥의 티였습니다. 2014년의 중원로터리의 모습을 넣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정할 자료

1) 1912년 설계되면서

191041일부터 해군임시건축지부에 의해 진해군항이 설계되면서

2) 1950년대 느티나무를 식재했으나

1960년 느티나무를 식재했으나


하단에는 1955년 9월 1일 시 승격식장 입구에「진해시제실시」의 현수막 3장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진해시제 실시의 정신이 옳은지, 통합시로 바꾼 것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훗날의 역사로 넘깁니다.


마진터널 준공식, 여좌천 송원교 아래의 빨래터, 신축이전 후 정비가 끝난 1940년경의 진해고등여학교 교사,

1937년 9월 23일 진해심상고등소학교(현 도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있었던 진해고등여학교 생도와 진해심상고등소학교 고등과 여생도의 애국자녀단 발단식, 1975년 중앙일보사와 동양TV(TBC TV)가 진해시에 기증한 진해시립도서관의 개관식 사진이 하단을 장식하였습니다.

 

다음 회에는  입구의 북쪽과 동편 벽면을 소개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