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20년대의 시가지 변두리의 모습을 봅니다.
일본인들이 시가지를 조성하며 시가지의 중심인 중평리를 비롯한 도천리, 도만리를 비롯한 한국인 거주인들의 땅을 아주 싼값에 강제수용하여 조천리 한일거리에 경화동 취락단지를 조성하여 쫓아냅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 거주의 시내 신시가지와 조선인 거주의 경화동 신시가지가 조성되었습니다.
■ 1927년대 중앙로에서 경화역 방면으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육대교차로에서 행암으로 향하는도로가 중앙로입니다.
이곳의 구 경화극장의 동쪽 모서리에서 경화역으로 올라가는 도로변의 모습입니다.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집은 겉으로는 방앗간으로 보이는데(간판 글씨가 아주 흐림) 막걸리를 제조, 판매하였던 양조장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바로 뒤로 중화요리집이 보이는데 한글로 OO루로 적힌 것이 흐리게 보입니다.
집 앞에는 배달용으로 보이는 두 대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습니다.
조금 위로 도장가게가 있고 그 앞쪽의 둥글고 낮은 드럼통에 방화사라 적어 놓은 듯한 글씨가 보입니다.
맞은 편에는 사진관(광복 후 흥화사진관), 학교의 대각선 모서리에는 흥화문방구 등 선산 김씨분들이 열었던 점포들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확대해 보면 도로의 끝에서 오른쪽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수의 전봇대와 그 위의 전선들, 앞쪽 전봇대 위의 변압기는 그 만큼 많은 가구에 전기를 공급한 것을 의미합니다.
행인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과 머리 모양(단발) 또한 1920년대의 유행으로 보기에는 무리입니다.
경화역사가 1926년에 준공되어 영업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사진촬영 시기를 1927년으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들로 볼 때 위의 사진은 1927년이 아닌 1950년대의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심부(불종거리)의 서편에는 경화동소방조(消防組)와 소금가게가 있었고, 동편에는 경화의원, 양과점, 목욕탕 등의 신식 편의시설들과 경화장(3, 8일의 5일장)도 열려서 시가지의 시내와 대비되는 읍내라고 흔히 이야기하였습니다.
윗쪽에는 진해공립보통학교, 다시 그 위에는 경화역이 있었습니다.
경화동의 동쪽은 석리, 서쪽은 중초리, 남쪽은 이동리, 북쪽은 조천리가 있었습니다.
■ 「1923년도 진해여자고등학교」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이 과연 바른 것일까요?
사실은 연도와 교명 모두 틀리게 기록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내용을 바르게 잡으면 「1940년도의 진해공립고등여학교」가 됩니다.
지금부터 바른 기록을 찾아 같이 탐사를 해보겠습니다.
■ 진해공립고등여학교의 개교 과정
진해여자고등학교의 홈페이지에는 설립인가와 개교에 관한 기록 외에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진해공립고등여학교는 1922년 5월 24일 진해학교조합 제364호로 설립 인가신청을 하여 11월 29일에 설립인가를 받습니다.
신청 당시 학교의 계획하였던 위치는 북원광장 남서편의 진해헌병분대의 동편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1923년 2월 13일 현재의 위치로 위치변경 인가 신청을 하였고, 한 달 후인 3월 13일에 위치변경의 인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달 후인 4월 29일에 1-4학년의 각 학년별 1학급씩 4학급으로 개교를 합니다.
■ 진해공립고등여학교 교사의 신축 시기
위치 변경인가를 받은지 불과 한 달만에 이렇게 크고 화려한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1932년 7월 경성전기에서 발행한 안내책의 사진을 170% 확대한 것입니다.
1932년에 발행하였으니 1931년 쯤에 촬영한 사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좌상편에 북원광장(탑이 서있는 곳)이고 오른쪽(북쪽)으로 한 블럭을 지나 삼각형으로 보이는 곳이 진해공립고등여학교(지금의 진해여고)입니다.
앞쪽(남)에 나무들이 있고 좀더 오른쪽에 교문이 보이며, 그 뒤로 운동장과 교실로 추정되는 건물이 보입니다.
그 어디에서도 위 사진과 같은 건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1923년 개교 당시에는 4학급에 필요한 4교실과 교무실, 특별실 등 10개 정도의 교실이 필요했을 것인데, 그런 조건을 갖춘 곳이 바로 사진 속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사진 속 교사의 건축 시기에 대하여 자료를 찾기 위하여 진해공립심상고등소학교(당시 교명은 진해제일심상고등소학교)의 연혁지를 추적해 보았습니다.
1938년 9월 13일 건물에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식(上樑式, 上棟式)이 있었습니다.
교실에서의 공부가 시급하였기 때문에 10월 2일에 우선 필요한 시설들만 갖춘 채 문을 열어서 교실에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다음 해인 1939년 2월 18일에 비로소 신축교사 준공식을 가집니다.
따라서 위 사진은 교사 앞 화단의 나무들과 운동장과의 경계인 축대, 운동장의 정지작업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빨라도 1940년 경에 촬영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학교 관계자와 졸업생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 주에는 일제강점기의 교과서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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