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실록/- 근대사진전시회

제2회 진해근대사사진전시회 5(진해우편국)

진해인 2014. 4. 18. 06:42

오늘은 지금의 진해우체국청사가 건축되기까지 진해의 통신사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 진해 최초의 통신기관은 전회에 소개드린 해군진해임시건축지부가청사(1910년 4월)였습니다.

   진해의 통신기관은 해군과 육군의 군사용으로 개설되었습니다.

   최초의 전문통신기관은 1910년 9월 해군진해임시건축지부가청사 앞쪽에 현동우편소를 설치하였습니다.

   진해우편국 외에 현동우편소와 경화동우편소가 있었습니다.

   현동우편소는 지금은 군사우편으로 현동사서함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고, 경화동우편소는 경화우체국으로 아직 업무를 계속하고 있지만 구 청사의 사진은 전하지 않습니다.

 

■ 진해우편국은 1912년 10월 25일 최신식 서양식(洋風)으로 건설된 것으로 인쇄하였는데, 1월 25일이 바른 기록입니다.

   杉山萬太 著 「鎭海(1912)」와 岡默堂 著「鎭海要覽」에는 1912년 1월 25일 개설일부터 이전 현동우편소의 모든 업무(萬事)를 처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p.21-22)에 의하면 안곡을 제외한 서부의 시내지역은 1일 3회, 중초리부터 행암까지의 동부지역은 2일 1회 배달을 하였고, 이중 서부지역에서 중초리, 경화동까지는 우편국의 직접배달 구역이었습니다.

 

 

향토지초안에 의하면 건축경비는 28,000원(圓)이 소요되었습니다.

당시 사무직원은 우편국장 관할 하에 통신계와 서무회계계가 있었습니다.

통신계는 우편, 통신, 대체(爲替), 우편전화, 소포 등 각계별(各係)로 구분하여 업무를 담당하였습니다.

1916년도의 취급한 통상우편은 접수(受付) 468,000여통,  배달 534,000여통이었습니다.

이 밖의 통계는 다음 기회에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1920년대 진해우편국 전경으로 군항마을 역사관의 대형 확대사진에서 편집하였습니다만,

    사진 전반을 분석한 결과 1912년 12월 전후의 사진으로 판단을 하였습니다.

    진해우편국의 후면과 전체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다음 회에는 진해요항사령부에 대하여 안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