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는 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습니다.
블로그의 주간 페이지뷰가 3월 10일부터 1,000회를 계속 상회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아껴주시는 덕분이겠지요.
오늘은 경화초등학교 교가에 감춰진 코드를 하나 들추며 비밀을 염탐해 봅니다.
이 일은 경화초등학교 100년사를 집필하면서 미제과제로 남겨두지 않기 위하여 일단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에서도, 1960년대에 본교에서 근무하셨던 선생님을 통해서도 어떠한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고, 본교의 교장님을 통해 교내 서류들을 찾는 것도 부탁드려 보았지만 별무소득이었습니다.
그래서 교가의 노래말(가사)에서 출발점을 찾기로 하였습니다.
사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시도이긴 하였습니다만.
이 과정은 「경화초등학교100년사(WEB판) 4 p.55」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 진해중학교 교가(진해고등학교 : 진해고교의 교명만 다름)
■ 본책에서는 교가 제정 시기를 개교 30주년이 되는 1950년 6월 1일로 설정하였는데 그 배경은 아래와 같습니다.
교가의 제정시기와 작곡가, 작사자는 미상으로 구전되어 왔다.
따라서 현재 자료를 찾을 수 없는 작곡, 작사자는 제외하고 제정 시기를 유추해 보고자 하였다.
교가 가사 중 ‘아세아 동반도 금수강산’은 남북한의 전 국토를, ‘성손 삼천만’은 남북한 전체 인구를 의미한다.
① 1945년 해방 당시, 한반도 인구는 약 2,500만 명(남한 약 1,600만명, 북한 약 90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1945-1960년의 인구증가 추이는 1945-1950년에 연 4%, 1950-1955년에 연 1%씩 증가하였다.
(출처 : 인구정책 어제와 오늘 홈페이지/시기별 인구정책/1940-1950년대)
이를 연도별로 환산하면 1950년 4월에 남북한 인구는 약 3,000만명을 넘어서게 된다.
② 교가 제정 시기는 진해중고등학교 1949년 이후(출처 : 진해중고50년사 p.132), 덕산초등학교 1951년 12월 5일인 점을 감안할 때 경화초등학교의 교가도 이 시기에 제정되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교가 제정 연도는 남북한 인구가 3,000만명을 넘어선 1,950년으로, 제정 일자는 당시 개교기념일이었던 6월 1일을 기점으로 삼고자 하였다.
■ 전 회의 첫 과제였던 교가의 제정시기를 본고에서는 광복 후로 설정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학교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교가를 제정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웅천초등학교 전신이었던 사립개통학교와 용원, 안청초등학교의 전신이었던 사립경명학교 교가의 가사를 살펴봅니다.
두 교가를 살펴보면 경화 교가가 광복 후에 제작된 것임을 낱말과 운율에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 개통학교 교가(작사 李光洙, 작곡 미상)
1. 곰메의 바위 밑으로 맑은 샘물 솟아나네
내도 되고 늪도 되며 구름 이러 비도 부어
(후렴) 가라 가라 아 아 내 샘 어린 아기 우짖는다.
2. 곰메의 바위 밑으로 맑은 샘물 솟아나네
별과 같은 빛을 받고 옥과 꽃의 정기 녹여
3. 곰메의 바위 밑으로 맑은 샘물 솟아나네
목마른 억조창생 골고롭게 마시어라
■ 경명학교 교가 (작사자, 작곡가 미상)
1. 조종산 높은 줄기 뒤에 솟으며
維新社會 열심을 자랑하며
太平洋水 如流가 앞에 솟으며
(후렴) 경명아 경명아 나의 경명 잊지 마세 어미 학교
2. 곰산이 높이 솟아 우뚝 솟으며
서양의 문명을 지세하여
유산에 날랜 끝에 속내 나오며1
- 진해교육사 pp.92-93 경상남도진해교육청. 200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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