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김구선생 친필시비
1) 1945년 11월 23일 김구선생이 상해에서 귀국하였고, 1946년 가을에 삼남지방을 시찰하면서 해안경비대를 창설한 손원일제독의 초청으로 9월 16일 진해를 방문하였다. 이 때 글씨를 부탁받았는데 바쁜 사정으로 미뤘다가 이듬해인 1947년 8월 15일에 글을 써서 진해로 내려보냈다.
2) 지역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시비를 제작하여 해군통제부의 관문인 북원로터리에 세웠는데 내용은 1592년 5월 6일 이순신장군이 옥포해전에서 승리한 후 선조임금의 몽진 소식을 접하면서 장군의 각오를 오언율시로 남긴 것이다.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바다를 두고 맹서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을 두고 맹서하니 초목이 알아준다 |
3) 시비는 1951년 이충무공동상 정초식을 앞두고 철거되어 덕환관음으로 옮겼다가 진해역 서편 정원으로 옮겼다. 이승만대통령이 하야한 뒤 현재의 남원로터리로 옮겨 세웠다. 2015년 11월 16일 창원시근대건조물 제2호로 지정되었다.
4) 김구선생의 친필시비와 함께 안중근의사가 1910년 3월 여순감옥에서 쓴 친필유묵 《위국헌신군인본분》도 진기사 정문 안에서 꼭 확인해 보면서 우국충정이 무엇인지 음미해 보기 권한다.
<10> 선학곰탕(진해해군병원장관사)
1) 진해의 초기 보건위생을 설계한 사람은 1905년 일본해군을 따라 진해에 들어온 중송학길이었다. 중송학길은 해군병원과 시가의 개인병원의 설립에 직접 관여하였고, 중초리의 피병사전염병사와 진해화장장, 진해의 5개 공동묘지의 입지 선정에도 자문을 하였다. 또한 진해 각급학교의 교의로도 활동하였고 예기들의 위생교육에도 앞장서 진해학교조합과 진해위생조합의 평의원으로도 선출되기도 하였다.
2) 이 건물은 1912년 신축한 《ㄷ》자의 단층 목조건물로 1938년 진해요항부의 해군병원장이 입주하면서 개축하여 사용하였다. 현관은 돌출형으로 되어 있고 동쪽은 남자들의 공간인 응접실로 서양식으로, 서쪽은 여자들의 주거공간인데 일식으로 건축되어 있다. 해군병원은 1912년 진해요항부 내에 설치되었는데 광복 후 진해 국군병원, 해양의료원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3) 광복 후에도 해군통제부의 해군병원장의 관사로 계속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일반인이 매입하여 선학곰탕이라는 상호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담백한 국물맛이 일품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4) 2005년 9월 4일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진해실록 > - 근대사보전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탐방 9(진해역, 중앙시장) (0) | 2018.04.09 |
---|---|
탐방 6(장옥,진해우체국,제황산) (0) | 2018.04.08 |
탐방 4(육각집, 원해루) (0) | 2018.04.06 |
탐방 3(흑백다방~군항마을역사관) (0) | 2018.04.05 |
탐방 2(해군의집~이충무공동상) (0) | 2018.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