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제1편 개교와 연혁」을 살펴봅니다.
제1편은 필자가 원고를 작성하여 안골포초등학교에 기고한 것입니다.
■ 제1편의 속지 입니다.
대동여지도의 웅천현 중 안골포 주변을 확대한 지도입니다.
■ 안골포를 알려면 먼저 「진해의 역사」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래 지도는 통합 전 진해시의 관광안내도입니다.
■ 지금의 안골포는 행정구역으로 웅동2동에 속합니다.
▷ 웅동2동이 시대별로 어떻게 명칭의 변경이 있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① 진해에서 현재까지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② 신석기시대의 유적부터 확인이 되고 있는데 안골동유적과 수도동유적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특히 안골동유적은 4만 여점의 유물이 채집된 대규모의 패총이었습니다.
③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해군통제부 내 현동의 세형동검출토지, 석동, 자은동, 웅동1동 영길의 무문토기산포지, 웅천동 죽곡의 동혈주거지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④ 삼한시대와 삼국시대의 유적은 진해 중심권에 있는 석동-자은동의 대규모 유적과 여좌동패총, 자마산 일대의 웅천고분군과 패총, 취락지, 산성, 서중동고분군 및 가야국 허황옥 황후 관련 유적이 있는 용원의 취락지, 패총유적, 웅동권의 마천고분군과 패총, 죽항(竹項)유적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유적은 석동-자은동유적입니다. 이 유적은 석동에서 자은동까지의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어서 이를 일괄하여 석동-자은동유적으로 부르는데, 생활공간(가운데-냉천(冷川)지역, 매장공간(왼쪽-석동의 동편), 관방지역(관청지역으로 오른쪽-자은동)의 구분이 명확하여 진해지역에 읍락국가(邑落國家)가 존재하였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자료들을 통해 정리해 보면 진해지역에는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였는데, 진해를 포함한 웅천, 웅동지역에는 포상팔국(浦上八國) 중 한 나라였던 고사포국(古史浦國)이 존재하였을 기능성이 높은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중종 7년에 도호부에서 웅천현으로 다시 환원하게 되는데, 김해도호부에 속하였지만 속현이 아닌 독립현이었기 때문에 명령을 받는 종속관계는 아니었습니다.
■ 행정동의 변천 과정입니다.
▷ 아래는 안골포가 속한 용원동의 주요 지명을 살펴봅니다.
자료의 출처는 하단의 각주를 참고하십시오.
■ 웅천현에서 발행한 준호구를 통해 일부지명의 변화를 추정해 보았습니다.
다음 회에는 웅동2동의 자연환경을 탐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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