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골포10년사 8(사립경명학교)
오늘부터 「제2장 용원지역 학교사 탐구」를 살펴 봅니다.
■ 제2장의 차례와 함께 1947년 해체 직전의 교사가 나타나 있습니다.
사립경명학교는 진해의 덕산과 안골포의 2 학교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덕산리의 학교는 덕산경명학교(德山慶明學校), 안골포는 안골경명학교(安骨競明學校)로 불렀습니다.
경의 한자가 서로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 사립경명학교는 1908년 9월 9일 웅천군 외동면 안골리의 안골포수군만호진의 구 청사를 가교사로 하여 개교하렸습니다. 설립자는 배창인, 이주향, 이득성, 초대교장은 김병우였습니다.
■ 1908년 10월 학교 설립인가를 받는데 필수적인 학교의 기본자산을 확립하였습니다.
웅천의 사립개통학교 교사로 한 때 사용하였던 웅천현 객사와 사립대정학교 인가철을 참고로 올렸습니다.
아래에 교가를 올렸는데 1920년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 사립경명학교에서 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1909년 1월 19일 순종황제가 창원부에 순행을 왔을 때 대취타대가 선두에서 진군악을 연주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진군악은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훗날 용원국민학교의 농악으로 이어져서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습니다.
■ 1914년 4월 1일 안골리 548번지로 1차 이전을 하고,
1930년에는 생도수가 더 많은 안골리 329번지로 2차 이전을 합니다.
안청국민학교가 신축교사로 이전하고 지금의 진해유치원이 있는 곳입니다.
■ 사립경명학교는 일제의 공립 전환을 끝까지 반대하다 1940년 28회 졸업을 끝으로 강제폐쇄를 당하게 됩니다.
이후 용원국민학교가 안골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용원 땅(지금의 명지)에서 개교하는 것은 경명학교가 교지 사용에 반대한 것에 대한 일종의 반대급부였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음회에는 이 지역에서 일어난 야학운동에 대해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