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사진전 12 (1950년대 2)
■ 1955년 2월 15일 국회 민의원 김철안 여시 일행이 진해시 승격 문제를 조사하기 위하여 진해에 왔습니다.
장소가 제황산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진해시가지가 한 눈에 보이는 러일승전탑(현 진해탑 위치)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 이하 출처 군항마을역사관>제2회 진해군항마을근대사사진전시회
1955년 진해와 함께 충무공의 얼이 서린 충무(현 통영시)도 시로 승격을 하였기 때문에 2개 읍을 모두 방문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1955년 9월 1일 진해읍으로 된지 24년만에 진해시로 승격이 되었습니다.
경 진해시제 실시 축
역사적인 시제실시 7만시민 축하하자
영원무궁 빛나리라 진해의 시제실시
이날의 감격은 2010년 7월 1일 일부 진해시의회 의원들에 의하여 만 55년도 채우지 못한 채 끝이 나고, 진해시는 통합 창원시의 1개 구로 변힘으로써 진해만의 자치행정은 사실상 마감을 하고 말았습니다.
→ 본 블로그 소개창의 사진으로 창원인이 아닌 진해인으로서 긍지와 자존감을 살리자는 취지입니다.
■ 1957년, 아직은 교통이 불편하여 섬지역의 주민들은 시내로 나와서 생활필수품들을 구입해야 하였으므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진해에는 수도, 연도, 소쿠리섬, 우도와 멀리 잠도까지 사람들이 사는 유인도가 많았습니다.
해군에서 작은 함정들을 지원하여 주기적으로 주민들이 시내에 왕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 1957년 여좌천의 한 지역에 다리가 놓여 있고 송원교로 불렀습니다.
원래부터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 때만 해도 진해의 모든 하천들의 물이 맑아서 어디서든 빨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왼쪽에서 남자 두 분이 다리를 건너려 하고 있고, 모자를 쓴 한 분은 다리 위에 앉아서 두 아낙네가 빨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