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사진전시회 5 (1920년대 1)
오늘은 1920년대 중 1923년에서 1926년까지의 역사를 소개드립니다.
■ 진해공립고등여학교(鎭海公立高等女學校)는 1923년 4월 11일(학교장 발령일 기준) 현 진해여자고등학교 위치에서 개교(개교식 4월 23일)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 이하 사진출처 군항마을역사관>제2회 진해군항마을근대사사진전시회
학생의 대부분은 일본인이었고, 일부 한국인 자녀의 입학도 허용하였습니다.
사진은 운동장과 화단의 정리가 마무리된 1940년 4월경의 학교전경입니다.
■ 1911-1912년 진해시가지의 조성이 거의 마무리됩니다. (경화동은 1914년 마무리, 북가는 1913년 이후 건축 시작)
사진 속의 건물 크기와 지붕 모양으로 볼 때 1911년경 진해시가지에 장옥을 건축하는 현장으로 보입니다.
사진의 오른쪽에는 모녀간으로 보이는 두 여자가 작업 감독자로 보이는 남자에게 꾸중을 듣는 듯한 표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일제의 조선인 임금 착취가 잘 드러나는 현장을 담은 사진입니다.■ 진해경찰서는 1923년 1월에 준공되었고, 도로변에 이식한 왕벚나무의 크기로 보았을 때 1920년대 후반의 진해경찰서 전경 사진입니다. 1914년 가을에 식재한 벚나무가 약 10년 정도 자란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 진해역(鎭海驛)과 창원역(昌原驛)을 철도로 이어주는 진해선(鎭海線)은 1926년 11월 11일 개통이 되었습니다.
1930년 4월 16일 창원역에서 진해역으로 운행하던 여객화물혼합열차가 장복산터널(長福隧道)을 통과 중 뒷편의 목탄을 적재한 무개차(無蓋車)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객차를 경화역에서 정리하는 모습입니다.
사진은 불에 탄 기차를 경화역에서 정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진 속의 전경(傳景)과 배경(背景)으로 볼 때 경화역의 서편에 위치한 작은 철교(아래로 작은 내가 있었다) 위로 보입니다. 현재 설산한의원 뒷편 건널목의 동쪽 끝부분에 해당하는데, 지금은 수로가 지하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습니다.
옛날 조천리(造川里 '제피내'로 불렀다) 북쪽에서 발원한 '제피내'로 불리던 내가 육구연못(六區연못)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