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 7(통신동~제황산동)
중원로터리 동쪽의 동명을 살펴봅니다.
▪浪花町(낭화정) → 通信洞(통신동)
1915년경 추정 진해우편국
중원로터리 동쪽에 위치하여 물결과 꽃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복 후 진해우체국이 있어서 통신동으로 개칭하였다.
- 아이세상장난감도서관 내에 진해문화원이 있고 국내 유일의 시월유신탑이 남아 있다.
▪末廣通(말광통) → 中央洞(중앙동)
중원광장(中辻)의 동쪽 끝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복 후 서진해 시가지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중앙동으로 이름하였다.
▪常盤通(상반통) → 復興洞(부흥동)
▲ 진해신사(현 진해남산초등학교 터) ▼ 진해읍사무소(현 데시앙아파트 터)
상반통은 북원로터리(北辻)에서 중원로터리(中辻)를 지나 일출통과 연결(태평사거리)되는 대각선의 도로 이름이었다. 상반(常盤)은 ‘영구불변’, ‘상록(常綠)’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도로변에는 상록의 의미가 담긴 소나무를 많이 식재하였다. 광복 후 진해읍사무소에서 일본인으로부터 진해읍을 접수하여 우리 고장을 다시 일으킨 곳이라 하여 부흥동으로 이름하였다.
▪兜山(두 산) → 帝皇山洞(제황산동)
산 전체의 형상이 투구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갑옷을 닮았다고 하여 갑산(甲山)으로도 불렀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산의 형상에서 부엉산으로 불렀다. 일본이 민심을 무시하고 산 정상에 일본해전기념탑을 건축하려 한데서 부엉산 산신령의 노여움에 대한 민담이 만들어져 구전되어 오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 공원 서편 입구의 '제황산공원'과 탑 정면에 '진해탑'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 진해 해군통신대 사용 벙커
진해지역 및 조선 연안의 방어를 수행하는 진해방비대의 예하부대로 통신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다. 1910년 4월 해군임시건축지부 가청사에서 업무를 시작하였다.
광복 후에도 해군의 주요 통신 업무를 맡아 처리하였다. 1958년 9월 11일 마산방송국 진해송신소(HLKD 1430KHZ 1KW)를 개소하여 1975.12.23 마산방송국 가포송신소(HLKD 940KHZ 10KW)로 이전할 때까지 군항방송으로 통칭되며 해군 관련 소식도 송출하였던 진해송신소의 방송 송출 관련 업무와 방비도 지원하였다.
■ 방공호
제황산공원 입구에 있으며 1941년 12월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일으킨 태평양전쟁에서 초반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1942년 미드웨이해전으로 주요 함정과 전투기들을 잃게 되면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군항인 진해에 가해질지 모르는 미국의 공습에 대비하게 되었다. 제황산을 비롯한 진해지역의 곳곳에 방공호를 건축하고 민간인들의 대피는 물론 생활필수품과 군수물자 등을 보관하며 장기전에 대비하였다. 따라서 진해지역의 방공호들은 대부분 1942년부터 1944년 사이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기에 진해의 각급학교에서는 소방훈련 및 대피훈련, 간호훈련 등을 정기적으로 실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