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2(완성기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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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시가 완성기의 건축물
1. 진해해군항공대
진해해군항공대는 일본해군이 항공대 확장 계획에 따라 1917년까지 17개 항공대를 1924년까지 증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산이 삭감되어 1대(隊)만 설치하기로 하고 동해의 목첩(目睫)인 진해요항부에 설치하기로 1924년 4월에 결정을 하였다. (주170)
해군진해항공대는 1935년 6월 5일 지진제(地鎭祭)를 시작으로 1936년 11월 28일 항공대 준공식을 하고 업무를 시작하였으며(1935년, 1936년 연혁 참고), 안곡동의 현 해군사관학교 부지에 위치하였다.
제51해군항공창 위치 | 참고사진 : 일본제21해군항공대 전투기(주171) |
(주170) 출전 : 황정덕. 진해시사 p.242. 출처 : 김인수. 앞의 책 p.60에서 재인용하였다. 진해시가 완성기는 1923년부터 1945년까지로 기존의 확충시설에 기반하여 계속적인 성장을 위한 교통시설의 확충과 행정체제의 승격으로 인한 내부적 발전을 도모한 시기였다. (김인수의 책 ⅸ)
(주171) 출처 : 大村市観光/大村の歴史/第21海軍航空廠があった街
2. 제51해군항공창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대륙전에 필요한 해군항공기의 제조와 수리는 조선에서 맡아 하도록 하는 계획에 따라 1942년 8월부터 풍호동 해안지대와 덕산동 일대의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항공창을 설치하였고, 원산에는 분창(分廠), 광주에는 육상기의 보급기지를 두었다.
공작기계와 전략물자의 부족으로 항공기를 생산하지는 못하였고, 일본 본토에서 부품을 가져와 조립하거나 고장기의 수리만을 하였다. 조립한 항공기는 35식 육상초급훈련기, 35식 수상정찰기, 냉식 수상전투기, 냉식 수상정찰기 등이 수시로 배정되었다.
항공창이 제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지만 조선의 어린 소년들을 모집했고, 나중에는 우수한 소년들을 모집하여 3개월의 단기교육 후 항공기술자로 일본 본토에 공급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주172)
(주172) 출전 : 황정덕. 진해시사 p.242. 출처 : 김인수. 앞의 책 p.60에서 재인용하였다.
3. 해군시설창
1940년대에 축조한 건물로 구조는 목조로 된 비늘판 벽체이고 지붕은 일식기와 우진각 지붕이다.
출입구가 건물 좌측으로 치우쳐 있고, 사각기둥이 있는 포치의 지붕은 삼각형의 페디먼트이며 창문은 오르내리창으로 되어 있다.
해군시설창(출전 : 해군시설50년사) | 해군공창 본관(출전 : 해군시설50년사) |
4. 해군공창 본관
요항부의 공창 본관으로 사용하였는데 전체 형태가 ㄱ자의 2층 건물이다. 목조의 비늘판 구조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일식 기와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주173)
해군 공작부에서 주로 사용하였고, 본교의 교실에서 공부한 진해공업보습학교 생도들이 실습을 한 곳이다.
(주173) 출전 : 황정덕. 진해시사 p.242. 출처 : 김인수. 앞의 책 p.61에서 재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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