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구제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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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애국가
대한제국 애국가(大韓帝國 愛國歌)는 대한제국 최초의 서양식 군악대에 지휘자로 초빙된 독일인 F. 에케르트가 작곡하였다. 한글과 함께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1902년 8월 15일 정식으로 제정·공포되었으며, 1904년 5월 각 학교에 배포되었다.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한 에케르트는 1903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태극훈장을 받았다.
대한제국(大韓帝國) 애국가는 황제에 대한 충성을 노래한 것이다.
상제(上帝)는 우리 황제(皇帝)를 보우(保佑)하사. 성수무강(聖壽無疆)하사 해옥수(海屋籌)를 산같이 쌓으시고. 위권(威權)이 환영(環瀛)에 떨치사 천만세(千萬歲)에 복록(福祿)이 일신(日新)케 하소서 상제(上帝)는 우리 황제(皇帝)를 도우소서. |
1912년 2월의 진해전경
출처 : 한옥션/현장경매 44-319. ‘鎭海大市街建設之現況’. 진해학교조합(주31) 중 상단 편집 |
(주31) 일본은 토지는 30년간, 산림은 20년간의 기간을 정해 진해시가지를 3회로 나누어 임대하였는. 제1차 임대는 1911년 4월 1일 36,078평에 대한 임대(貸下)를 시행하였다. 제2차 임대는 진해학교조합이 설립한 본교(진해심상고등소학교)의 학교기본재산 조성을 위한 재임대 가능 토지의 규모를 일본 해군성과의 협의를 거쳐 같은 해 11월 28일 확정하였고, 다음날인 11월 29일에 30,000평에 대한 임대(貸下)를 시행하였다. 제3차는 진해학교조합에서 무상으로 임대받은 토지와 산림을 대상으로 임대를 실시하였다.(30년간 무상임대, 25년간 민간 제임대. 1911년 참고) 따라서 위의 사진에 중원광장(中辻)의 남북을 경계로 하였을 때 동편의 건축이 시행되지 않은 점과 본교 신축예정지가 산림으로 남아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사진은 제3차 임대(貸下)를 앞둔 1912년 2월 말에 촬영하고 화보로 인쇄한 후 임대를 시작한 3월 15일을 전후하여 토지와 산림의 임대자들에게 배부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본 자료의 인용 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다음 회에는 학교조합의 창립과 개교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1911년의 내용을 소개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