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기지사령부 입구에서 공설운동장 서편을 향해 남쪽으로 뻗어있는 도로를 따라 소재하고 있는 마을들을 소개드립니다.
▪ 櫻田通(앵전통) → 道泉洞(도천동)
앵전통은 북원로터리(北辻)에서 진해요항부에 이르는 긴 도로변에 1911년 1만 그루의 벚나무를 식재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복 1년 후인 1946년에 진해제일공립국민학교가 도천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는데, 교명을 마을 이름으로 하였다.
도천리는 도절리(道節里)의 변이음으로 ‘남쪽 마을’의 의미를 갖고 있다.
․ 도천초등학교에는 19013년에 완성한 옹벽(擁壁)이 동-남-북쪽에 남아 있고, 1933년 준공한 강당(기초 부분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과 1942년 준공한 풀(현재 수생식물 재배지로 활용)이 남아 있고, 교내 곳곳에서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수령 100년 및 70년 내외의 배롱나무 2그루가 본관과 후관 사이에 심어져 있는데 8, 9월경 화사한 꽃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968년경의 풀 이용 모습
▲ 1913년 조성한 운동장의 옹벽 ▼ 중원로터리에 있었던 서진해지역의 대표수종인 팽나무(운동장)
․ 1930년 3월 10일 육군의날을 맞아 진해만요새사령부 창고에서 기념활동사진(영화)를 관람할 때 발생한 대화재로 사망한 107명 중 진해심상고등소학교 생도 57명이 사망하여 북가(현 여좌동)의 덕환관음(德丸觀音)에 사망자 위령비를 조성하였으나 현재 소실되고 없다.
▶ 진해기지사령부의 입구 남쪽에 해군 장교들의 사교클럽이었던 수교사가 있었는데 광복 후 기밀문서를 소각하면서 해체되었고, 현재 해군교회와 해군유치원이 운영되고 있다.
▪ 변천통(弁天通) → 도천동, 도만동(동쪽), 현동(서쪽)
북으로는 앵전통(櫻田通)에 접하며 진해심상고등소학교(현 도천초등학교)와 수교사(현 해군교회 및 해군유치원)으로부터 해군 병호(丙号)관사(현 도만동 드림빌아파트)를 지나 앵마장(벚꽃장. 구 해군회관)에 이르는 도로이다. 시가 조성 초기에는 하늘의 날씨를 분별한다는 의미의 변천통(辨天通) 불렀으나, 이후 진해심상고등소학교와 해군들이 있어서 ‘하늘도 두려워한다’는 의미의 弁天通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 도로의 서편에 1914년경 조성한 櫻馬場(앵마장 : 벚꽃장)이 있었으나 광복 후 대부분 벌목되었다. 현재 해군군사법원과 진해컨벤션센터(구 해군회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1927년 창원군에서 주최한 경상남도연합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하는 진해의 벚꽃이 전국의 명소로 알려지게 되었다.
1978년경 벚꽃장의 회치(會治) 풍경(도천초등학교 서편)
▪ 吉野町(길야정) → 道萬洞(도만동)
호구총수에 ‘도만리’로 나오는데 주민들은 ‘도만잇골’로 불렀다. 진해기지사령부 서편에서 해안까지의 벌판이 도만리였는데, 광복 후 도만리의 지명을 되살려 이곳을 도만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곳에는 해군 병호(丙号)관사(현 도만동 드림빌아파트)와 해군들의 집회장소였던 해우사(海友社)가 있고 도로 서편에 벚꽃장(櫻の馬場), 남쪽에 해군운동장(현 진해공설운동장)을 마주하고 있다. 조성 초기에는 길야정, 소화정(小花町), 화소정(花咲町), 천세정(千歲町), 화원정(花園町) 등 5개 마을로 계획되었으나 군인과 그 가족들이 입주하면서‘복 받은 땅’이라는 의미의 길야정으로 통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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